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Adobe Illustrator)를 오랫동안 사용해 온 디자이너들이 어피니티 디자이너(Affinity Designer)로 넘어왔을 때 가장 먼저 놀라는 기능 중 하나가 바로 ‘펜툴(Pen Tool)’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의 펜툴은 강력하지만 베지에 곡선(Bezier Curve)의 원리를 이해하고 핸들을 능숙하게 조작하기까지 상당한 연습 시간이 필요합니다. 반면 어피니티 디자이너는 사용자의 숙련도와 작업 목적에 따라 펜툴의 작동 방식을 바꿀 수 있는 독창적인 ‘모드(Mode)’ 시스템을 제공합니다.
상단 컨텍스트 툴바에 위치한 이 모드 버튼들은 단순히 아이콘의 차이가 아니라, 선을 그리는 알고리즘 자체를 바꾸는 핵심 기능입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가장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폴리곤 모드(Polygon Mode)’**와 **’스마트 모드(Smart Mode)’**의 차이점을 분석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드를 사용해야 작업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지 전문가의 노하우를 공개합니다.
1. 직선의 미학 폴리곤 모드의 특징과 활용
먼저 **’폴리곤 모드’**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다각형(Polygon)을 그리는 데 특화된 모드입니다. 이 모드를 선택하고 캔버스를 클릭하면, 드래그를 아무리 해도 핸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직선만이 그려집니다. 일러스트레이터에서 클릭만으로 직선을 그리는 것과 유사하지만, 어피니티의 폴리곤 모드는 아예 곡선 생성 가능성을 차단함으로써 ‘실수’를 방지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이 모드의 가장 큰 장점은 **’속도’**와 **’정확성’**입니다. 건축 도면을 따거나, 기하학적인 로고 디자인, 혹은 최근 유행하는 ‘로우 폴리(Low Poly)’ 아트워크를 작업할 때 빛을 발합니다. 핸들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점과 점을 연결하기만 하면 칼같이 떨어지는 직선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UI 디자인에서 딱딱 떨어지는 버튼이나 아이콘을 제작해야 한다면, 굳이 일반 펜 모드를 쓰며 핸들을 집어넣는 수고를 할 필요 없이 폴리곤 모드로 빠르게 외곽선을 따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2. 혁신적인 곡선 알고리즘 스마트 모드의 마법
어피니티 디자이너가 펜툴의 진입 장벽을 낮춘 일등 공신이 바로 **’스마트 모드’**입니다. 이 모드는 펜툴의 혁명과도 같습니다. 사용자가 점을 찍으면,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점과 점 사이의 가장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곡선을 계산하여 연결해 줍니다. 핸들을 당기거나 각도를 조절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스마트 모드로 점을 찍으면 일반적인 네모난 노드가 아닌 ‘동그란 점’ 형태의 노드가 생성됩니다. 이 노드들은 유동적입니다. 점을 하나 더 찍을 때마다 이전 선들의 곡률이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 미세하게 자동 조정됩니다. 마치 종이 위에 연필로 부드럽게 스케치를 하듯, 툭툭 점을 찍어나가는 것만으로도 유려한 곡선이 완성됩니다.
이 기능은 ‘트레이싱(Tracing, 사진을 대고 그리기)’ 작업이나 **’유기적인 형태(Organic Shapes)’**를 그릴 때 압도적인 성능을 발휘합니다. 사람의 얼굴 라인, 구름, 식물 줄기처럼 불규칙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이 필요한 대상을 그릴 때, 일반 펜툴로 핸들을 일일이 조절하는 것보다 스마트 모드로 점을 찍어나가는 것이 작업 속도를 3배 이상 빠르게 만들어줍니다.
3. 두 모드의 결정적 차이 제어권과 알고리즘
두 모드의 차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곡률 제어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 폴리곤 모드: 곡률 제어가 ‘없습니다’. 모든 연결은 최단 거리인 직선입니다. 사용자는 오직 ‘정점(Vertex)’의 위치만 결정하면 됩니다. 결과물은 날카롭고(Sharp), 기계적이며, 구조적입니다.
- 스마트 모드: 곡률 제어를 ‘알고리즘’이 담당합니다. 사용자는 흐름의 포인트만 지정하고, 프로그램이 최적의 곡선을 찾아줍니다. 결과물은 부드럽고(Smooth), 자연스럽으며, 유동적입니다.
일반적인 ‘펜 모드(Pen Mode)’가 사용자가 위치와 곡률 모두를 수동으로 제어하는 ‘매뉴얼 운전’이라면, 스마트 모드는 곡률을 알아서 맞춰주는 ‘반자율 주행’, 폴리곤 모드는 직진만 가능한 ‘기차’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4. 노드 툴을 이용한 수정과 모드 전환의 유연성
어피니티 디자이너의 강력함은 그린 이후의 ‘수정’ 단계에서도 나타납니다. 스마트 모드로 그린 곡선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폴리곤 모드로 그린 직선을 곡선으로 바꾸고 싶다면 언제든 **’노드 툴(Node Tool, 단축키 A)’**을 사용하여 속성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 모드로 그려진 둥근 노드를 선택하고 상단 옵션바에서 ‘Sharp(뾰족하게)’를 누르면 즉시 직선으로 변하며 폴리곤 모드로 그린 것과 같아집니다. 반대로 폴리곤 모드로 그린 직선 노드를 ‘Smooth(부드럽게)’로 바꾸면 핸들이 생성되며 곡선으로 변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목적에 맞는 모드를 선택해 그리는 것이 수정 시간을 줄이는 지름길입니다. “이 형태가 딱딱한 기하학 도형인가, 부드러운 자연물인가?”를 먼저 판단하고 모드를 선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5. 전문가의 실전 팁과 결론
실무에서는 이 두 모드를 단축키와 함께 섞어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 모드로 부드러운 캐릭터의 윤곽선을 따다가, 뾰족한 귀 부분에서는 잠시 직선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스마트 모드 상태에서 Alt 키(맥은 Option)를 누르고 클릭하면 그 부분만 뾰족한 노드(직선)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굳이 모드를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어피니티 디자이너의 폴리곤 모드와 스마트 모드는 ‘펜툴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깬 기능입니다. 직선이 필요할 땐 폴리곤 모드로 과감하게, 자연스러운 곡선이 필요할 땐 스마트 모드로 우아하게 작업하세요. 일러스트레이터의 펜툴에 좌절했던 분들이라면, 스마트 모드 하나만으로도 어피니티 디자이너를 선택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도구가 작업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가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도와주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 펜툴 모드 관련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스마트 모드로 그리는데 원하는 모양대로 안 나오고 자꾸 선이 꿀렁거려요. A 스마트 모드는 점과 점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거나 가까우면 알고리즘이 곡률을 계산하면서 선이 원치 않게 휘어질 수 있습니다. 곡선이 급격하게 꺾이는 부분에서는 점을 좀 더 촘촘하게 찍어주고, 완만한 곳에서는 넓게 찍어주는 등 점의 밀도를 조절하면 해결됩니다.
Q2 일러스트레이터처럼 그냥 핸들을 당기면서 그리는 건 없나요? A 있습니다. 펜툴 모드 중 가장 왼쪽에 있는 **’펜 모드(Pen Mode)’**가 바로 일러스트레이터의 기본 방식과 동일합니다. 클릭 후 드래그하여 핸들을 뽑아내는 방식입니다. 정밀한 제어가 필요할 때는 이 기본 모드를 사용하면 됩니다.
Q3 폴리곤 모드로 그렸는데 나중에 곡선으로 바꿀 수 있나요? A 네, 가능합니다. 다 그린 후 **’노드 툴(Node Tool)’**을 선택하고, 곡선으로 만들고 싶은 선분을 클릭하여 드래그하거나, 노드를 선택하고 상단의 ‘Smooth’ 버튼을 누르면 핸들이 생성되어 곡선으로 변환됩니다.
Q4 펜툴 모드 변경 단축키는 없나요? A 아쉽게도 펜툴 모드 자체를 키보드 단축키로 1, 2, 3, 4번으로 지정해 변경하는 기능은 기본 설정에는 없습니다. 상단 툴바에서 마우스로 클릭해야 합니다. 하지만 노드 툴 상태에서 노드 속성(Sharp, Smooth, Smart)을 바꾸는 단축키는 설정에서 지정할 수 있습니다.
Q5 아이패드 버전 어피니티 디자이너에도 이 기능이 있나요? A 네, 완벽하게 동일하게 있습니다. 아이패드 버전에서도 펜툴을 선택하면 하단 컨텍스트 메뉴에 스마트 모드, 폴리곤 모드 아이콘이 나타납니다. 특히 애플 펜슬과 스마트 모드의 조합은 직관적인 드로잉 경험을 제공하여 PC보다 더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