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와 포토샵을 오가며 작업하던 디자이너들에게 **’어피니티 디자이너(Affinity Designer)’**는 충격적인 경험을 선사합니다.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서 벡터 작업과 래스터(비트맵) 작업을 실시간으로 오갈 수 있는 ‘페르소나(Persona)’ 시스템 덕분입니다. 하지만 이 자유로움은 동시에 큰 혼란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바로 **’벡터 브러시’**와 **’래스터 브러시’**의 존재 때문입니다.
“둘 다 브러시인데 뭐가 다른 거지?”라고 생각하고 아무거나 사용했다가는, 나중에 그림을 확대했을 때 픽셀이 깨져 보이거나 반대로 벡터 수정을 할 수 없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하는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어피니티 디자이너의 핵심 엔진인 두 가지 브러시의 결정적인 차이를 기술적으로 분석하고,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써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드립니다.
1. 디자이너 페르소나의 핵심 벡터 브러시의 작동 원리
어피니티 디자이너를 실행했을 때 기본 모드인 ‘디자이너 페르소나(Designer Persona)’에서 사용하는 브러시가 바로 **’벡터 브러시(Vector Brush)’**입니다. 이 브러시의 가장 큰 특징은 **’수학적 경로(Path)’**를 생성한다는 점입니다. 화면에 획을 그으면 눈에는 물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점(Node)’**과 **’선(Curve)’**으로 이루어진 벡터 데이터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강력합니다. 선을 그은 뒤에 **’노드 툴(Node Tool)’**을 이용해 선의 굴곡을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고, 선의 두께(Stroke Width)를 조절하거나 색상을 변경하는 것이 언제든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벡터 기반이기 때문에 이미지를 100배, 1000배 확대해도 선이 깨지거나 흐릿해지지 않습니다. 로고 디자인, 캐릭터 라인 아트, 타이포그래피 작업처럼 깔끔하고 수정이 잦으며 크기 변형이 자유로워야 하는 작업에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어피니티의 벡터 브러시는 일러스트레이터와 달리, 벡터 경로 위에 **’비트맵 질감(Texture)’**을 입히는 방식도 지원합니다. 즉, 뼈대는 벡터지만 피부는 래스터인 하이브리드 브러시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 경로 수정은 가능하지만, 질감 자체는 확대 시 깨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2. 픽셀 페르소나의 매력 래스터 브러시의 표현력
상단 좌측의 ‘픽셀 페르소나(Pixel Persona)’ 아이콘을 클릭하면 툴바의 구성이 바뀌며 포토샵과 유사한 환경이 됩니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브러시가 ‘래스터 브러시(Raster Brush)’ 혹은 **’픽셀 브러시’**입니다. 이 브러시는 벡터 경로를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캔버스라는 도화지 위에 수많은 색상 점(Pixel)을 직접 찍어 바릅니다.
래스터 브러시의 장점은 압도적인 **’표현력’**과 ‘블렌딩(Blending)’ 능력입니다. 벡터로는 표현하기 힘든 수채화의 번짐, 유화의 꾸덕꾸덕한 질감, 연필의 거친 흑연 느낌 등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색과 색을 자연스럽게 섞거나 문지르는 회화적 표현이 가능합니다. 디지털 페인팅, 콘셉트 아트, 사진 리터칭 작업에는 래스터 브러시가 제격입니다.
단점은 **’수정의 한계’**와 **’해상도 의존성’**입니다. 한 번 그은 획은 수정할 수 없으며(지우개로 지워야 함), 이미지를 확대하면 픽셀이 계단처럼 깨져 보이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작업 시작 전에 캔버스 크기(해상도)를 충분히 크게 설정해야만 고품질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두 브러시의 결정적 차이 수정 가능성과 해상도
두 브러시를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린 후의 수정’**을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 벡터 브러시: “선을 그렸는데 모양이 마음에 안 든다.” -> 노드 툴로 점을 잡고 당겨서 수정하면 됩니다. 선이 너무 얇다면 수치만 올리면 됩니다. 이것이 ‘비파괴적(Non-destructive)’ 작업입니다.
- 래스터 브러시: “선을 그렸는데 모양이 마음에 안 든다.” ->
Ctrl + Z로 취소하거나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그려야 합니다. 선 두께를 바꾸려면 다시 그려야 합니다. 이것이 ‘파괴적(Destructive)’ 작업입니다.
또한 **’출력 목적’**에 따라서도 갈립니다. 대형 현수막부터 명함까지 다양한 크기로 인쇄해야 하는 로고라면 무조건 벡터 브러시여야 합니다. 반면 웹용 일러스트나 질감이 중요한 삽화라면 래스터 브러시가 훨씬 풍부한 느낌을 줍니다.
4. 어피니티만의 강점 벡터와 래스터의 혼합 사용
어피니티 디자이너가 찬사를 받는 이유는 이 두 가지를 한 파일 안에서, 심지어 한 레이어 구조 안에서 섞어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워크플로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스케치 및 라인 아트: ‘디자이너 페르소나’에서 벡터 브러시를 사용하여 깔끔한 외곽선을 땁니다. 언제든 수정이 가능하므로 형태를 잡는 데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 채색 및 질감: ‘픽셀 페르소나’로 넘어가서 래스터 브러시를 사용해 벡터 라인 안쪽에 색을 칠하고 명암과 텍스처를 입힙니다.
- 마스크 활용: 벡터 도형 안에 픽셀 브러시로 칠을 하면, 벡터가 자동으로 ‘마스크(Mask)’ 역할을 하여 선 밖으로 색이 삐져나가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두 브러시의 장점만을 취해 작업하면, 형태의 정교함(벡터)과 회화적 감성(래스터)을 모두 갖춘 수준 높은 아트워크를 효율적으로 제작할 수 있습니다.
5. 결론 작업의 목적에 맞는 도구를 선택하라
결국 “어떤 브러시가 더 좋은가?”라는 질문은 틀렸습니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로고, 아이콘, UI 디자인, 텍스트 타이포그래피처럼 명확한 경계와 수정 용이성이 중요하다면 주저 없이 벡터 브러시를 선택하세요. 반면, 디지털 페인팅, 배경 일러스트, 사진 합성과 같이 부드러운 색감과 질감이 중요하다면 래스터 브러시가 정답입니다.
어피니티 디자이너는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두 브러시의 특성을 명확히 이해하고 상황에 맞춰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다면, 여러분의 디자인 스펙트럼은 무한히 확장될 것입니다. 도구에 얽매이지 말고 도구를 지배하는 디자이너가 되시길 바랍니다.
브러시 차이 관련 자주 묻는 질문 (FAQ) 5가지
Q1 벡터 브러시로 그렸는데 확대하니까 깨져 보여요. A 어피니티의 벡터 브러시 중에는 ‘텍스처 이미지(PNG 등)’를 기반으로 한 브러시들이 있습니다(예: 수채화, 초크 스타일 등). 이들은 뼈대는 벡터지만 표면은 비트맵 이미지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방식이라, 브러시 원본 이미지보다 과도하게 확대하거나 선을 굵게 하면 텍스처가 흐릿해질 수 있습니다. 완전한 벡터를 원한다면 ‘Solid Pen’ 같은 기본 브러시를 써야 합니다.
Q2 포토샵 브러시(.abr)를 가져오면 벡터로 쓸 수 있나요? A 아닙니다. 포토샵 브러시는 기본적으로 래스터(픽셀) 기반입니다. 어피니티 디자이너로 불러올 수는 있지만, 이는 자동으로 ‘픽셀 페르소나’의 래스터 브러시 라이브러리에 등록됩니다. 벡터 브러시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Q3 벡터 브러시를 래스터(픽셀)로 바꿀 수 있나요? A 네, 가능합니다. 벡터 브러시로 그린 레이어를 우클릭하고 **’Rasterise(래스터화)’**를 선택하면, 벡터 속성이 사라지고 일반 픽셀 이미지 레이어로 변환됩니다. 이후부터는 픽셀 페르소나에서 지우개나 필터 효과를 자유롭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Q4 타블렛 필압 감지는 둘 다 되나요? A 네, 둘 다 지원합니다. 상단 툴바의 ‘Controller’ 옵션을 ‘Pressure(필압)’로 설정하면 됩니다. 다만 벡터 브러시는 필압에 따라 선의 ‘두께’가 가변적으로 조절되는 방식이고, 래스터 브러시는 두께뿐만 아니라 ‘불투명도(Opacity)’나 ‘흐름(Flow)’까지 제어할 수 있어 손맛은 래스터가 더 좋습니다.
Q5 일러스트레이터의 ‘벡터 브러시’와 같은가요? A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그은 선을 ‘면(Shape)’으로 확장(Expand)하여 텍스처 자체를 벡터화할 수 있지만, 어피니티 디자이너의 텍스처 벡터 브러시는 텍스처 자체는 비트맵으로 유지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순수 벡터 텍스처를 원한다면 일러스트레이터가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